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블로그를 시작하며

일전에 페이스북에서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라는 이화여대 오욱환 교수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은 비록 기업체에서 학문과는 거리가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만약 내가 어릴 때의 장래희망이었던 과학자, 즉 과학이란 학문을 하는 사람이 되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등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만약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일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충고는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깨닫기 위해 조금 시간이 필요한 표현이지만, 곱씹어 볼수록 이 충고가 얼마나 핵심을 찌르고 있는지 알게 된다. 논문을 쓰는 것에 한정해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논문에만 국한될 조언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 가치있는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시작"을 하지 않아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언젠간 해야지.'하면서 마음에 부담을 안고 있으면서도,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다음달 출장만 갔다 오고 나면...', 이런 식으로 자꾸 시작을 미룬다. 그런데 막상 그런 바쁜 일들이 끝나고 약간 여유가 생겨도, 이번엔 또 다른 핑계를 대며 시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내가 '블로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그런데 왜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내가 깨닫게 된 대답은 바로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제공하는 플랫폼은 여러가지가 있다. 네이버나 다음같은 포털을 이용해도 되고, 티스토리같은 블로그 전문 사이트, 워드프레스같은 전문가용 사이트,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구글의 블로거도 있다. 일단 블로그를 "시작"하려면, 이중에 어떤 곳이 나에게 맞는지 결정해야 하고, 그러려면 각 사이트의 장단점을 파악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왜 블로그를 하려고 하는지 명확히 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뭘 알고 있고 무슨 글을 쓸 수 있는지, 블로그를 통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하고.... 이쯤되면 귀찮음이 물밀듯이 밀려오게 되고 또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무언가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올라도, 당장 내 블로그가 없고, 블로그를 시작하는 일은 힘들기 때문에, 결국은 글을 쓰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 하루 정도가 지나면, 안타깝게도 글로 쓰고 싶었던 그 생각과 아이디어는 그냥 없어져 버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한두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140자 안에 쓸 수 있는 내용은 그냥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잠시 잡아서 적는 것 뿐이다. 깊이 있게 내용을 발전시킬 수도 없고, 좀더 찾아보고 정리하며 나중에도 참고할 만한 나의 지식 창고로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내 진짜 문제는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블로그를 제대로 정의하고, 그에 맞는 사이트를 선택하는 일, 블로그를 제대로 시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내 문제는 블로그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이었다. 꼭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고, 블로그가 아니어도 에버노트에 써도 되고, 그냥 피씨에서 워드나 아니면 아웃룩을 이용해도 되는 것을...

오욱환교수님의 글을 읽고 나서,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일단 아무 곳이든지 글을 쓰고 보자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나니 역설적이게도, 블로그를 시작하는 절차가 그렇게 힘들거나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블로그 만들기"라는 키워드로 네이버와 구글에서 한번씩 검색해 보고, 글 두개 정도씩을 읽고나서 그냥 구글 블로거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바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아마 10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동안 그토록 어려워한 것이다. 아니, 어려워했다기보다 핑계를 대고 피해왔던 것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 무엇을 채워나가게 될지 아직은 나도 확실히 모르겠다. 아마도 외국 생활, 특히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겪거나 느낀 점들, 모바일 업계의 소식이나 동향에 대한 내용, 영어 공부에 관련된 글들이 주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블로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언젠간 해야지.'하고 마음 먹었던 일들은 시작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단 하고 봐야겠다는 것이다. "Just Do It."은 이럴 때도 써먹을 수 있는, 짧으면서도 참 좋은 말이다. Just Do It!